About SOS Children's Villages

SOS어린이마을 소개

모든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가정

  • 소개

SOS어린이마을의 시작

1949년 헤르만 그마이너는 첫 번째 SOS어린이마을을 오스트리아, 임스트에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인해 가정과 안정,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린 어린이들을 돕는데 전념하였습니다.
많은 후원자들과 SOS어머니들, 그리고 직원들의 노력으로 SOS어린이마을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성장했습니다.

하 마리아 여사와 이 프란치스카 여사의 이야기

한국에 온 선교사 하 마리아 여사

하마리아 여사

(맨 오른쪽 하 마리아 여사)

한국에 온 선교사 하 마리아 여사

  • 1959년 12월 8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오스트리아인 하 마리아 여사는 대구시 중구 삼덕동 1가 64번지에 ‘가톨릭 근로 소년원’을 세워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보호, 양육하고 있었다.
하마리아 여사

하 마리아 여사와 SOS어린이마을 설립자 헤르만 그마이너와의 “기적”같은 만남

  • 그러던 중 하 마리아 여사는 1962년 6월 19일 동생이 사제서품을 받게 되어 오스트리아로 잠시 휴가차 귀국하게 되었다. 본국 공항에서 여러 친지 및 동료들의 귀국환영을 받고 있던 중 어느 신문기자와의 대담에 응하게 되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해온 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이야기하던 중 재정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유럽에서 아동복지 사업체로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호평을 받고 있는 SOS어린이마을과 같은 아동복지 시설로써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았다.
하마리아 여사
  • 매년 이탈리아 가르다(Garda)호숫가 옆에 있는 칼도나쪼(Caldonazzo)에서는 전 세계 SOS어린이마을 어린이들이 모여 캠프를 했다. 그때, 한 어린이가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 1919-1986, SOS어린이마을 창설자)에게 신문지로 싼 작은 선물을 건네주었는데, 그 선물을 싸고 있던 신문은 바로 하 마리아 여사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것이었다. 그 이후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의 연락으로 하 마리아 여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로써 SOS어린이마을을 한국에 설립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하마리아 여사

(왼쪽부터 하 마리아 여사, 중앙 진 루이세 여사, 오른쪽 이 프란치스카 여사)

하마리아 여사

초대 원장 하 마리아 여사

  • 1963년 봄에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와 하 마리아 여사는 SOS어린이 마을 설립운영 담당자로 이 프란치스카 여사와 진 루이세 여사(간호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서정길 대주교와 대구에 SOS어린이마을을 세우는 데에 합의를 보았고, 1963년 5월 13일 대구 후생원을 인수하여 재단법인 SOS어린이마을로 명칭을 변경하고 초대 원장으로 하 마리아 여사가 취임하게 되었다.

2대 원장 이 프란치스카 여사

  • 1962년 입국한 이 프란치스카 여사는 하 마리아 여사와 함께 한국에 SOS어린이 마을 설립과 운영을 위해 일해 오다가 1968년 6월 1일, 하 마리아 원장은 경남 마산의 국립결핵 요양소 및 근로여성회관의 일을 맡게 되어 임지로 떠나게 되고,
    이 프란치스카 여사가 2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국제본부와 긴밀한 유대를 통해 기초만 이루어진 마을을 더욱 굳건히 하고 발전시켜나갔다.
하마리아 여사
하마리아 여사

특별히 이 프란치스카 여사는 매일 각 가정을 돌면서 어머니들과 친교를 나누고 일손도 돕는 한편, 가정공동체와 함께 기도시간도 가지며 마을 가족들의 심리치료사로서 사춘기에 있는 어린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올곧게 자라도록 이끌었다.
이 두 여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이 되면 한국SOS어린이마을을 돕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은인들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오늘날 한국SOS어린이마을이 이렇게 건재한 것은 은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이 분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한국SOS어린이마을 50년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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