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SOS Children's Villages

SOS어린이마을 소개

모든 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가정

  • 소개

SOS어린이마을의 시작

1949년 헤르만 그마이너는 첫 번째 SOS어린이마을을 오스트리아, 임스트에 설립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인해 가정과 안정, 그리고 가족을 잃어버린 어린이들을 돕는데 전념하였습니다.
많은 후원자들과 SOS어머니들, 그리고 직원들의 노력으로 SOS어린이마을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성장했습니다.

  • 헤르만 그마이너
  • 하 마리아 · 이 프란치스카

헤르만 그마이너 Hermann Gmeiner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선사업가이며 SOS어린이마을의 설립자입니다.

헤르만그마이너

Hermann Gmeiner History

  • 1919년 6월 23일 오스트리아 알버슈벤데에서 태어남.
  • 2차 대전이 끝나고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함.
  • 1949년 인스브루크에 SOS(Societas Socialis)를 설립
  • 1949년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임스트에 SOS어린이마을을 설립
  • 1986년 4월 26일 인스브루크에서 세상을 떠남.
  •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다.

  •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는 1919년 6월 23일 오스트리아 보랄베르크(Vorarlberg)지역에서 대가족을 이룬 농부의 아들로 아홉 자녀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어머니는 그가 다섯 살 때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큰 누이가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동생들을 돌보았던 이런 누이의 모습에서 그는 SOS어린이마을의 핵심 아이디어인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 전쟁의 참상 속에서 아동의 고통을 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러시아 군인으로서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직접 경험한 그는 전쟁속에서 전쟁 고아들의 고통을 보면서 아동복지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아동들이 자신의 가정 안에서 성장해야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으로부터 SOS어린이마을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 첫 번째 SOS어린이마을의 설립

  • 오스트리아 화폐 600실링(약 40달러)이라는 아주 작은 금액의 돈으로 그의 신념은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1949년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 임스트(Imst)에서 SOS어린이마을이 처음으로 설립되기에 이릅니다.
  •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로 확산된 그의 아동복지이념

  • 헤르만 그마이너가 시작한 아동복지이념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가운데 1963년 대한민국 대구에 최초로 비유럽권에 SOS어린이마을이 건립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아동들을 위해서 SOS어린이마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다 1986년 인스브루크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동들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던 SOS어린이마을 임스트(Imst)에 묻혔습니다.

“세상의 모든 큰 일은 누군가가 해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때만 실현됩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우리의 어린이들입니다.”

SOS어린이마을 설립자 헤르만 그마이너(1919~1986)

하 마리아 여사와 이 프란치스카 여사의 이야기

한국에 온 선교사 하 마리아 여사

하마리아 여사

(맨 오른쪽 하 마리아 여사)

한국에 온 선교사 하 마리아 여사

  • 1959년 12월 8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오스트리아인 하 마리아 여사는 대구시 중구 삼덕동 1가 64번지에 ‘가톨릭 근로 소년원’을 세워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보호, 양육하고 있었다.
하마리아 여사

하 마리아 여사와 SOS어린이마을 설립자 헤르만 그마이너와의 “기적”같은 만남

  • 그러던 중 하 마리아 여사는 1962년 6월 19일 동생이 사제서품을 받게 되어 오스트리아로 잠시 휴가차 귀국하게 되었다. 본국 공항에서 여러 친지 및 동료들의 귀국환영을 받고 있던 중 어느 신문기자와의 대담에 응하게 되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해온 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이야기하던 중 재정적인 뒷받침만 된다면 유럽에서 아동복지 사업체로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호평을 받고 있는 SOS어린이마을과 같은 아동복지 시설로써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일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털어놓았다.
하마리아 여사
  • 매년 이탈리아 가르다(Garda)호숫가 옆에 있는 칼도나쪼(Caldonazzo)에서는 전 세계 SOS어린이마을 어린이들이 모여 캠프를 했다. 그때, 한 어린이가 헤르만 그마이너(Hermann Gmeiner, 1919-1986, SOS어린이마을 창설자)에게 신문지로 싼 작은 선물을 건네주었는데, 그 선물을 싸고 있던 신문은 바로 하 마리아 여사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것이었다. 그 이후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의 연락으로 하 마리아 여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이로써 SOS어린이마을을 한국에 설립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하마리아 여사

(왼쪽부터 하 마리아 여사, 중앙 진 루이세 여사, 오른쪽 이 프란치스카 여사)

하마리아 여사

초대 원장 하 마리아 여사

  • 1963년 봄에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와 하 마리아 여사는 SOS어린이 마을 설립운영 담당자로 이 프란치스카 여사와 진 루이세 여사(간호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서정길 대주교와 대구에 SOS어린이마을을 세우는 데에 합의를 보았고, 1963년 5월 13일 대구 후생원을 인수하여 재단법인 SOS어린이마을로 명칭을 변경하고 초대 원장으로 하 마리아 여사가 취임하게 되었다.

2대 원장 이 프란치스카 여사

  • 1962년 입국한 이 프란치스카 여사는 하 마리아 여사와 함께 한국에 SOS어린이 마을 설립과 운영을 위해 일해 오다가 1968년 6월 1일, 하 마리아 원장은 경남 마산의 국립결핵 요양소 및 근로여성회관의 일을 맡게 되어 임지로 떠나게 되고,
    이 프란치스카 여사가 2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국제본부와 긴밀한 유대를 통해 기초만 이루어진 마을을 더욱 굳건히 하고 발전시켜나갔다.
하마리아 여사
하마리아 여사

특별히 이 프란치스카 여사는 매일 각 가정을 돌면서 어머니들과 친교를 나누고 일손도 돕는 한편, 가정공동체와 함께 기도시간도 가지며 마을 가족들의 심리치료사로서 사춘기에 있는 어린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올곧게 자라도록 이끌었다.
이 두 여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이 되면 한국SOS어린이마을을 돕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은인들에게 감사 편지를 썼다.
오늘날 한국SOS어린이마을이 이렇게 건재한 것은 은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이 분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한국SOS어린이마을 50년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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